※ATTENTION※ ㈜KOG 사의 게임 엘소드 기반의 3라인 위주 2차 창작 회지입니다. 가볍게 읽으실 수 있는 썰북으로 준비했으며, 2차 창작에 거부감이 있으시거나 지뢰이신 경우 구매하시는 것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개인해석 多 ❝개인해석에 따른 호칭이 많습니다.❞ ❝개인설정이 많이 섞여 있습니다.❞ ❝원작의 EP47까지 스포일러가 섞여 있습니다.❞ ❝원작 개변 내용이 섞여 있습니다.❞ ↑ 위의 사항을 숙지하셨다면 모쪼록, 즐겁게 즐겨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구매하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U//U)! Written by 사과 표지 : 서화님(@BrillanteYOU)커미션 Twitter : @APPLE__LETTER E-mail : another_1@naver.com postype : https://n0-title.postype.com/ Copyright ⓒ2022 By 사과레터 All rights reserved. Sunset Glow“우리의 유대에 대하여” 01. 기습 검사와 마법사는 눈을 깜빡였다. 자신들을 둘러싼 변이체들과 숨어 웃는 교단원의 웃음소리. …저기, 엘소드. 황당함을 숨길 수 없는 목소리로 보라색 머릿결을 가진 마법사가 말했다. “이거, 설마 함정이랍시고 만들어 놓고 우리가 걸렸다고 생각해서 비웃는 거 아니지?” “어엉…. 아이샤. 네 생각이 맞는 것 같은데.” 돌아오는 것은 붉은 머리 검사의 심드렁한 답변. “사람을 얕잡아 봐도 정도껏 얕잡아 봐야지. 이게 뭐냐? 이 정도는 나 혼자서도 해.” “우리 둘이 임무 끝나고 복귀 중이었으니, 기습이랍시고 한 것 같은데 조악해서 웃음도 안 나와. 진짜 엘소드 혼자 한 손으로 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자신이 마력 개방을 하는 것과 동시에 검사가 양손에 검을 쥐는 것을 보고 여유롭게 웃으며 지팡이를 가볍게 휘둘렀다. “엘소드, 우리 누가 더 많이 잡았는지 내기할래?” “헹, 누가 봐도 내가 이길 내기 아니야? 아이샤, 후회하지 말라고.” “그건 해봐야 아는 말이지, 이 천재 마법사님한테 감탄하지나 말라고?” 그 말을 신호로 둘은 동시에 적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오래된 동료 사이에 으레 신호란 필요 없는 것처럼. 02. 정비 달각달각, 끼릭. 기계 나사 돌아가는 소리가 연구실에 울렸다. 미묘한 침묵, 그 침묵을 채우는 기계음. “레이븐 형, 다 됐어요!” “흠, 다 됐나?” 그럼요, 이번에는 이쪽 화력을 높이고 내구도를 더 높였다고요! 잔뜩 들뜬 채 손본 나소드 신체를 설명하는 소년을 보며 투사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이 신체는 또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청, 수고 많았다.” “별말을요. 불편하신 곳은 없으시고요?” “그래, 아직은 네가 잘 봐준 덕분에 없는 것 같다.” 갓 앳된 티를 벗어난 소년은 서글서글한 미소를 짓다가 낮게 시선을 내리깔았다. 낮고 진중하게, 무언가 반드시 그에게 전해야 하는 말이 있는 것처럼. “할 말이 있는 것 같군, 왜 그러지?” “아무리 제가 봐 드린다고는 해도 한계까지 몰아붙이진 마세요. 어디까지나 나소드 신체인 만큼 과열될수록 수명에 좋진 않을 거예요.” “…유념토록 하지. 조언 고맙다.” “별말을요, 동료잖아요. 엘소드도 그렇고 모두가 걱정할 테니까요.” 신체가 아니라 수명이라고 콕 집어 말한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그들에게는 비밀로 할테니 조심하라는 무언의 경고였겠지. 낮고 진중한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평소처럼 서글서글하게 웃던 소년이 투사에게 꾸벅 인사를 건넸다. “레이븐 형,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 정비 고맙다. 좋은 하루 되길 바라지.” 03. 도발 “호오? 어디서 피 냄새가 짙게 난다 해서 찾아왔더니 네녀석이었느냐.” “썩 꺼져.” 핏빛 머리의 검사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파괴의 마왕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 순간 검기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마왕의 심복이 재빨리 제 건블레이드로 막았다. “그리 까탈스럽게 굴 필요도 없지 않느냐, 짐은 흥미로운 장난감을 찾아다닐 뿐이고, 너는 그 갈증을 달랠 것을 찾으니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마력 장갑으로 전방을 아래에서 위로 크게 베어내는 마왕의 행동에 검사는 눈을 찌푸리며 검으로 막아내었다. 마족이란 족속은 이래서 싫었다. 파괴와 살육만을 갈구하며 그것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실 자신조차도 눈앞의 마족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불쾌했다. “그러니 어떻겠느냐, 이 무료함이 가실 때까지나 네 그 갈증이 달래질 때까지 한 번 맞대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누구 마음대로?” “그야 당연히 짐이 정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다못해 이런 점조차 하나하나 신경이 거슬렸다. 제멋대로 찾아와서는 거만하게 굴며 대단한 척, 붙어보자며 시비를 걸어오는 것이 결국은 자신이 아니면 상대해 줄 사람이 없다는 증거가 아니던가? “……루. 오늘은 다른 쪽에서 날뛰어도 될 것 같으니 그쪽으로 가자.” “오호라, 시엘. 좋은 놀이터를 찾았느냐?” “…응.” 역시, 짐의 충실한 심복이로구나. 있는 대로 도발하던 것은 언제냐는 것처럼 싹 잊고 공포의 마왕은 고개를 숙여주는 심복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앞에서 저러고 있을 거면 그냥 빨리 꺼지면 좋을 텐데, 실수로 베어버리기 전에…. 그런 생각을 할 무렵. “잊지 말거라, 엘리시스. 이번엔 시엘의 노력이 가상해서 넘어간다만 다음번엔 이렇게 간단히 넘어가지 않을 것이야.” “그러시던가.” 04. 조언 충돌 부하를 견디지 못한 회로의 말로는 처참하다. 그 과정을 늦추기 위해 손을 아무리 봐도, 아예 제거하지 않고서는 방대한 힘을 가져오겠지만 결국 기억 데이터를 계속해서 좀먹을 것이다. 이래서야 꼭……. 포병은 손을 멈추었다. “이브 누나.” 무기질한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포병은 눈을 두어 번 깜박였다. 수색대의 리더가 봐달라고 데려오며 구태여 말을 더하지 않았지만 말할 것도 없이 이제는 우리의 이름도 점점 잊어가는 상태겠지. “…?” “있잖아요, 우리는 다 잊더라도 자기 자신과 목적만큼은 안 되잖아요.” 그건 고르고 골라 포병이 겨우 내뱉은 말. 나소드 왕국을 재건한다는 목표를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이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그렇게 무리할 필요 없어요, 이브 누나. 당신의 곁에는 정 많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것만은 절대 놓지 마세요.” 어쩌면 닿지 않을지도 모를 그런 조언. “그리고 우리와 인연을 맺게 해 준 첫 매듭인 엘소드도 잊으면 안 되죠. 돌아가요, 동료들의 곁으로.” 돌아오는 것은 무서울 만큼의 적막. 이래 보여도 조력자 역할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요? 그런 말을 뱉었을 쯤.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만, 뜻하는 바는 알겠습니다. 돌아가죠.”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대답으로도 얼마나 기뻤던가. 포병은 그저 웃으며 같이 갈 테니 염려 말라는 대답을 돌려주었다. 05. 기억의 한 조각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제 좋을 대로 편리한 부분만 기억할 때도 있고, 때때로는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은 아예 도려내어서 무의식이라는 상자 속에 구겨 넣을 때가 있다고. 검사는 속죄를 위한 길을 걸으면서도, 과거의 기억에 자신이 휩쓸리지 않도록 노력했다. 딱 필요할 때 꺼내어 볼 수 있게, 옛 동료들과. ……. ……. 옛 동료들과. 차마 이름조차 입에 담을 수 없어 소중히 간직해야만 했던 사랑하는 사람이 퇴색되진 않았어도, 기억이 흐릿해지는 것은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가 아무리 잊지 않으려고 해도 인간의 본능적인 방어기제로 연인의 얼굴이나 목소리가 떠오르지 않는 것도 어쩔 수 없다며 투사는 애써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다만, 그저 씁쓸하고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 이것은 자기만족의 행위로, 불에 타다 남아버린 편지의 일부 마냥 제게 남은 미련의 한 조각이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이 이미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새롭게 만나 동행하게 된 동료가 그녀를 닮았다는 이유로 종종 돌아보고는 했다. 연인과 동료를 재단하며 현재의 동료를 욕보일 생각이 아니었다, 그저 흐릿해지는 기억 위에 애써 덧그리기 위한 애처로운 붓질에 가까운 행위였을 것이다. “레이븐?” “아, 레나.”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동료의 기척에 투사는 드물게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불러도 대답이 없길래.” “그랬나? 미안하다, 잠시 옛날 생각을 좀….” “그래? 옛날 생각이라….” 그 말을 듣던 엘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잔잔히 웃었다. “그래도 이제 더는 괴롭기만 한 기억은 아닌 거지?” “…….” “처음에는, 언급하는 것조차 꺼렸으니까. 이렇게 조금씩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건 그만큼 우리를 믿어준다는 의미도 된다고 생각해. 다행이네.” 처음보다는 분위기가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역시 그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동료를 깊게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 그것만 있다면 우리는 어떠한 모습이어도 달라진 것이 하나 없을 것이다. 06. 망각 한바탕 베어낸 후 검사는 뒤를 돌아보았다. 한참 적을 베어내고 있을 때, 등 뒤에서 습격하던 적을 제거했던 에너지. 그건….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브.” “….” 아, 젠장. 작게 욕설을 중얼거리던 검사는 제 머리를 벅벅 헤집고 손을 내밀었다. “엘소드라고 해.” “입력했습니다.” 제 동료는 힘을 사용할 때마다 기억 데이터에 손상이 와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이렇게, 종종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그게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자신이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과 제 동료가 한 선택이기에 존중해야 한다던 말이 동시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브, 잊지 마. 네가 아무리 우릴 잊어도 우리는 네 동료야. …몇 번이고 불러줄게.” “종래에는 이 말조차 잊게 될 겁니다, 엘소드. 제 기억은 결국 무너져버릴 모래성인데도…….” “상관없어! 몇 번이고 말하면 그만이잖아!” 검사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다가, 그저 자신을 바라볼 뿐인 동료의 손을 붙잡고 동료들이 기다리는 곳을 향해 함께 끌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모래성처럼 무너질 환상 같아서, 우리 모두를 잊고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에. 07. 티타임 둘의 다과 시간은 마법사의 제안에서 시작했다. 단 걸 잘 먹지 않는 편임에도 매번 책을 구하러 가면 손에 한아름 들고 오는 것은 어쩌면 그 나름대로 필사적인 노력일지도 모른다고, 포병은 그리 생각했다. 서로 날카롭고 예민한 분위기를 가라앉혀주는 것도 결국 자신의 눈앞에 있는 그가 하는 일이 아니던가. “저어, 아이샤 누나.” “응? 왜 그래?” “굳이 시간 내서 오시는 이유, 물어봐도 될까요?” “청이랑 이야기하는 시간이 좋아서?” 저런 말을 태연하게 하는 것도 참 누나만의 재주지. “반은 농담인데, 반은 진심이야. 나도 종종 지칠 때가 있거든. 이렇게 기분 환기를 시켜주지 않으면 큰일이니까!” “상대라면 엘소드도 있지 않나요?” “엘소드는……. 음, 나 아니어도 생각할 게 많잖아. 배려하고 싶기도 하고, 그리고 사실 청이 이것저것 나한테 연구내용 들려주는 걸 듣는 게 즐거워서.” 그렇게 말하며 웃는 모습이 어쩐지 쓸쓸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이었을까. 포병은 눈을 깜빡이며 마법사의 앞에 마주 앉았다. “그럼 보자, 누나. 오늘은 제가 뭘 연구하고 있었냐면요…….” “응, 어떤 건데?” 홍차를 홀짝이며 제 이야기를 경청해주는 모습이 어찌나 진지하던가, 작게 웃음이 났다. 분야가 분명 다름에도 열렬히 들어주고 할 수 있다고 응원해주는 행동에서 얼마나 힘을 받는지 알고는 계실까. “누나, 누나 연구는 잘 되어가고 계세요?” “…응? 아, 물론이지! 막히는 건 조금 있지만, 가끔 애드한테 조언도 듣고 있거든. 의외로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날카롭게 지적하니까, 놓치는 부분을 잡아줘.” “애드 형이요? 하긴…….” 그래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으면 마찬가지로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걸 알고 있을지. 자신이 지지를 받는 만큼 그녀 역시도 지지해주고 싶은 사람이라는 걸. 08. 일그러진 유대 철퍽철퍽, 고여 있는 피 웅덩이를 천진난만하게 밟는 소리가 났다. 쌓인 시체 위에 주저앉아 마왕은 제 심복을 바라보았다. 이번에 찾아온 장난감들은 꽤 흥미로웠다. 버티는 것도 그 나름대로 버텨주었고, 아주 조금이나마 작은 생채기를 만들어 자신을 들뜨게 한 것도. “헌데 시엘, 어찌 그런 표정을 짓느냐? 꼭 슬퍼하는 것 같구나.” “…생채기가 났잖아. 미안해, 루.” “뭔가 했더니 그 이야기였느냐, 짐은 오히려 즐거웠으니 상관없었느니라. 조금 더 버텼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을 안타깝게 됐구나.” 태연하게 웃으며 심복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마왕을 감싸며, 심복은 제 무기를 던져 주군을 향해 살벌하게도 날아오는 검을 막아냈다. 오호라, 아직도 숨이 붙어있었던 녀석이 남아있었느냐? 반짝이는 눈을 하며 살아있는 것을 찾아 재빨리 뛰어가는 모습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축 늘어진 팔을 들고 휙 흔들다가 곧 마지막 발악에 흥이 식었다는 눈을 하고서 시체를 멀리 휙 던져버린 마왕은 다시 그에게 다가왔다. “시엘, 역시 모두 나약하기 짝이 없느니라.” “다른 걸 찾아야겠네.” “아니면 간만에 그 녀석들을 보러 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구나.” “……그럴까. 시체의 산을 뒤로하고 떠나는 주군을 따라 발길을 옮기던 심복은 눈을 감았다. 제 주군이 벌이는 살육에는 이미 익숙해졌건만. …애초에 그녀가 이렇게 변한 것은 자신을 구하려다 창에 꿰뚫린 탓이었다. 주군은 그건 자신에게 해방이었으며 괘념치 말라며 흥얼거리고 말았으나 그녀를 따르겠다고 결정했음에도 어쩌면, 다른 길이 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드는 건. ……. ……. 이제 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것이 너의 뜻이라면, 나는 얼마든지 따르겠어. 루. 09. 재회 그날 벨더에서 자신을 구해주었으면서도 끝끝내 자신의 부름에 뒤를 돌아보지 않고 네가 알던 나는 이제 없다고 말했던 순간, 자신의 누나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됐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돌아오라고도 말하고 싶었다, 잡고 싶었다. 끝끝내 그럴 수 없었지만. 검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누나, 이제 만족해?” “…….” 검사의 옆구리를 관통한 검을 보며 죽음의 기사는 멈칫하고서 검에서 손을 떼어냈다. …엘소드. 허, 이제야 좀 정신이 드나 보네. 급소를 피해 이 정도면 죽지 않을 정도다. 검사는 그리 판단하고 피범벅인 손으로 제 누나의 팔을 붙들었다. “이러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아니, 같은 상황이 와도 나는 똑같이 선택할 거야. 엘소드. 나는 몇 번이고, 이 손으로 동료들의 원수를 갚겠어. 몇 번이고 같은 선택을 할 거야.” 그러면서도 꽂은 검을 뽑지 못하는 것은, 검이 오히려 상처를 막아 지혈을 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었을까. 검사는 그 상황에서도 피식 웃음이 났다. 아무리 변했다고 해도, 여전히 제 누이의 면모를 가지고 있구나. “누나, 얼른 가. …곧, 동료들이 올 거야. 나도 이제, 고작 이 정도로는 죽지 않아. 가, 가서……. ……. 누나가,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와.” 누나는, 자유롭게 떠나. 짓씹어 피범벅이 된 입술로 씩씩하게 웃으며 말하는 모습. 이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고통이 덜하도록 검을 뽑고서. “안 돌아올 거야. 기다리지 마.” 10. 단절 솔직한 감상평을 말하자면 불편했다. 조금씩 말수가 적어지고, 장난을 쳐도 이해를 할 수 없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네 모습이 꼭 기계 장치를 떠올리게 해서.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불쾌함에 공간의 마녀는 어느 순간 전장의 천사와 괜스레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왜? 라고 묻는다면……. 천재 마법사조차 설명할 수 없는 곤란한 감정이었다. 동료니까,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 마음이 가라앉는 건 대체 왜일까. 철딱서니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인 건, 네가 찬란한 빛을 뿜는 것이 처절한 단말마로 보이던 그 순간이었을까. 갑자기 돌아오지 않는 너를 찾아다니던 중에 널 고치던 애드와 마주한 것은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어쩌면…. 네 상태가 이러하다는 걸 알아달라는, 네 필사적인 노력이었을까. ……. 그때, 내가. 어쩌면 네게 문스톤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감정회로와 힘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못해서 네 기억 데이터가 망가지는 일은 없었을까? ……이브? 응? 대답해줘. 마법사는 그제야 제 감정에 이름을 붙였다. 그건 죄책감이었다. 설령 선의라고 해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지도 모를 동료의 모습에 마음 속 깊이 느끼고 있던 무의식적인 죄책감. 피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어서 애써 불쾌함으로 포장했던 감정이었다. 이제와 겨우 꺼내볼 수 있었지만, 사과하기엔 늦어버린. 하지만 이제 그 선택에 대해 미안해하거나 동정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당신은 누구시죠?” 마치 나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하는 태도에도, “난 아이샤야, 아이샤 렌다르. 렌다르 가문의 천재 마법사님이지. 있지, 이브. 그때 말했던 거 기억나? 우리를 기억하지 않는 날이 오면 너한테 꼭 말하겠다고 했잖아. 우리랑 동료가 되어주지 않을래? 너를 단절시키고 고립시키는 이 공간 같은 건 내가 부숴버릴게. 이쪽으로 와, 이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이고 손을 내밀겠다고. 11. 엉망진창 그것은 절대 우리에게 적대적이지 않다. 연구를 하며 내린 결론은 그러하였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무조건 호의적인 것은 또 아니었다. 까딱 잘못 건드리면 삼켜질 무의 힘, 끝의 원천. 건드릴 때부터 각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순도 높은 힘에 다가갈수록 오염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니까. 그에 맞게 철저히 대비도 했다. 생각보다 더 순도 높은 것이 찾아올 줄 몰랐을 뿐이지. “엘소드라면 아까 저쪽 수련장에….” …. 이런, 아무래도 오늘은 엘소드가 목적이 아닌 것 같은데? 본디 리더의 그림자 속에서 나오지 않는 공허가 제 연구실에 직접 나타난 덕에 연구는 이미 초토화된 상태였다. 세심하게 다뤄야할 힘의 농도가 짙어진 탓에 메인보드가 망가지고, 계기판이 망가진 건 덤인 수준이었으니까. 나와서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만 보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 공허의 행동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 말 것, 필요 이상으로 말을 붙이지 말 것, 시선을 굳이 마주하지 말 것. 그리고 그 순간 닿는 손길에. “으왁, 깜짝이야! 뭐예요?!” “…….” 팔 부근을 스치고 지나가니 일부분 침식된 것이 사라져있었다. 엘소드도 눈치 못 채고 있었는데. 과연, 모든 것의 끝에 있는 자는 다르다는 걸까. 포병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고맙습니다, 그래도 다음부턴 언질은 해 주셨으면 하네요! 엘소드처럼 마냥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가는 편은 아니거든요.” “……너는 말이 너무 많군.” 그런 말을 남기고서 스르륵 사라지는 공허를 보며 포병은 고쳐야 할 장비들을 손에 쥔 채로 허망하게 그 자리를 바라보았다. 말도 안 돼, 이러고 사라진다고요? 정말로요? 12. 침묵 ……. 숨이 막힐 정도로 지독한 침묵이었다. 누구 하나가 짓눌려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참으로 기묘한 침묵. 둘 다 기본적으로 말수가 적은 것도 한몫했지만, 기본적으로 상성이 좋지 않았다. 섬광의 나소드 여왕과 불굴의 투사. 시작은 원치 않는 신체 개조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니 자신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과 적대감에 대해 이해한다고 말했던 것에 대해 나소드의 여왕은 이제 기억도 나지 않겠지. 투사는 부쩍 말수가 줄어들고 활동 범위조차 눈에 띄게 줄어든 여왕의 곁에 앉았다. “이브, 감정 회로와 힘,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아 과출력의 결과로 기억 데이터가 꾸준히 손상되고 있다고 들었다.” “……맞습니다, 뭔가 문제라도?” “선택할 수는 없는 건가?” “그럴 수는 없습니다, 감정 회로를 제거하게 된다면…. 저는 당신들의 동료일 수가 없어요. 또, 힘은 왕국을 재건하는 데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이죠.” “…그런가, 생각이 짧았군. 네 생각이 그러하다면 존중하겠다.” 다시 찾아온 어깨를 짓누르는 침묵. “그때, 내가 너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고 했던 건, 기억하고 있나?” “……기억나지 않습니다.” 찾아오는 것은 영원한 단절. 동료들과의 관계를 포기하지 못한 그가 정작 점차 기억을 잃어가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져서. 투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브, 그래도 우리가 동료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고맙습니다, 레이븐.” 이 대화조차도 그 기억 속에서 사라질 더미라고 해도. 13. 불안 라비. 사랑스러운 아이. 네가 만났던 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야. 응, 마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아마도 라비가 아닌 내가 있는 거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애써 참고 있는 것 같아. 아마 마오 그 아이도 그와 같은 반응이겠지. 하지만 너를 위한 세계를 아직 만들지 못했으니까, 네 달콤한 꿈을 깨울 수 없어. 널 불안하게 하고, 슬프게 하는 감정은 내가 전부 감당할게. 마오, 그 아이에게도 잘 설명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 라비. 아무래도 마오는, 이해를 잘하지 못한 것 같아. 그게 어디가 행복이냐고 내게 물었어. 왜 이해를 하지 못할까? 네 친구라면 분명 네 결정을 이해하고 또 누구보다 존중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말했는데.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지으며 울먹이는 거지? 난 알 수가 없었어. 역시, 너의 유일한 친구는 나뿐일까? 네가 느끼는 불안은, 줄곧 이런 느낌이었을까,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부정당하는. 막연하게 이해하던 감정보다 받아들이고 보니 너를 더 이해하게 된 것 같아. 그러니 이제 걱정하지 말고 좋은 꿈 꾸면서 쉬고 있어. 마오에게 다시 한번 이야기했어. 너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마오가 알고 있던 라비도, 나도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까 이해하더라. 역시 네 안목은 틀리지 않았어. 내가 만들려고 하는 세계에 대해 고민했는데, 이번 일로 알게 되었어. 라비, 사랑스럽고 소중한 아이. 네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게. 14. 판도라의 상자 벌컥, 하고 공학자의 연구실 문이 열렸다. 위험한 곳임에도 제집 드나들 듯이 할 수 있는 상대는 딱 하나뿐이었으니 돌아가라고 말하려고 뒤를 돌아보는 찰나 잔뜩 가져온 자료를 보고, 할 말을 잃어 공학자는 한마디 말을 내뱉었다. “……뭐냐? 뭘 그렇게 잔뜩 들고 온 거야.” “내가 여태까지 정리해놓은 연구 자료들. 이미 알만한 자료들은 제외하고 최대한 간추려 온 것들이야. 거기서 필요한 게 있으면 가져가라고.” 그렇게 말하며 마법사가 가져온 자료를 내려놓았고, 공학자는 드물게 다가가 슬쩍 집어 확인했다. …웬일이래. 그런 말을 덧붙이며. “…내용물 좀 읊어봐라.” 시공간의 좌표, 이상 현상 데이터, 쌓은 자료들을 다시 분류하며 차곡차곡 정리하던 마법사에게 문득, 공학자는 한 좌표를 짚으며 물었다. 정리된 좌표들 사이로 정리되지 않은, 급하게 마구 휘갈겨진 좌표. 어딜 봐도 엘리오스의 형식이 아닌 것. “어라, 이건…?” “…정리해왔다고 하지 않았냐?” 한심하게 쳐다보는 사이, 마법사는 기억을 되짚어보다가 설명하기를 꺼리듯, 한참 망설였다. “……. ……설마.” “설마, 뭐.” “어느 연구실이었던 것 같은데, 나도 휘말렸던 곳이라 좌표 기록할 틈 같은 건 없었던 것 같아, 이게 왜 있는 거지?” “…그럼 이거 내가 가져도 되냐? 연구해보면 어딘지 알 수 있겠지.” 가져도 괜찮다고 말하면서 평소답지 않게 말끝을 흐리는 건 왜였을까. 답지 않게 굴긴. …애드라면, 가능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 말을 중얼거리는 건 왜인데? 한참 계산을 도출한 결과 나오는 결론. 이건 현재의 엘리오스 좌표가 아니군. “……맞아. 아마 훨씬 과거겠지, 애초에 내가 왜 갈 수 있었는지도 설명할 수 없어. 남아있는 이유조차…….” “…과거라고.” 일말의 빛이 과학자의 눈에 감돌았다. 그건 그가 자신의 몸에 금기의 실험을 한 이래로 처음 보는…. 하지만, 마법사는 알고 있었다. 저 일말의 희망이 얼마 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자료를 펼치고 이것저것 대비하며 분주해지던 손길이 멈추는 것은 곧 이었다. 인상을 확 구기던 그는 곧장 연구실 구석으로 향했고. 와장창, 빠각! 구석에 처박혀 있는 책상 따위를 부수며 화풀이를 하고, 한참이나 망가진 것을 부수고 또 부순 후에서야 멈췄다. 공학자의 그런 히스테릭한 행동에도 마법사는 놀라지도 않고서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를 말리지도, 진정시키지도, 그의 행동에 대해 감히 안쓰럽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저 다음 행동을 기다리듯 가만히 바라보았을 뿐. 당연했다, 좌표가 있다 한들. 갈 수 있을 리 없지. 갈 수 있었다면 진즉 갔겠지. 간다고 해도 같은 곳일 수 없지. 자신보다도 그가 더 뼈저리게 잘 아는 사실이 아니던가. 저건,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니 그에 대해 감히 섣부른 위로 같은 것은 하지 않는 것이 옳았다. 털썩, 하고 주저앉은 그가, 고개를 숙이고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야, 나가 있어라.” 그 말 한마디에 담긴 많은 감정, 마법사는 조용히 연구실 문을 닫고 나왔다. 드디어 혼자 남았음을 직감하자 공학자의 속에서 꾹 눌러온 것이 터져 나왔다. 울부짖음, 절규. 한 번 터져 나온 것을 쉬이 진정시키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 어째서 이건 불가능한 가능성일까요? 알면서도 놓을 수 없는 건 왜인가요. 연구실 문 너머, 그 절규를 듣고 있던 마법사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기억났다. 너를 잘 부탁한다고 하셨던 따스한 그 말. ……왜 잊고 있었을까. 머나먼 과거에 간섭했던 부작용이었을까. 어쩌면 내가, 널 다시 절망하고 흔들어 놓은 건 아닐까. 열어서는 안 될 판도라의 상자를 억지로 열어버린 건 어쩌면 내가 아닐까.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15. 휴식 복부 부근의 피를 대충 지혈하고서, 검사는 나무에 천천히 기대어 앉았다. 대충 동료들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한 시간. 그때까지 자두면 맞겠네. 아…. 젠장, 아프긴 더럽게 아파.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기대고 있다가, 문득 드는 한기에 감고 있던 눈은 뜨지 않은 채로 검사는 입을 열었다. “야, 아인. 나 고작 이런 거로는 안 죽어.” 그 부름에 대답이라도 하듯 검사의 검은 그림자 사이로 인영 하나가 꿈틀거렸다. 회복을 위해 금세 깊게 잠이 든 검사는 보지 못했으나 곧 인간의 형상을 하고서 낫을 든 공허가 나타났다. “또, 무리했나. …허나 아직은 때가 아니군.” 주변에 다가오는 것들을 갈무리하며, 공허는 가만히 곤히 잠든 검사를 바라보았다. 전보다 훨씬 앳된 티를 벗어난 얼굴, 확실히 날카로워진 인상. 지킬 것이 많아진 이의 모습일까. 결국, 너도 끝에는 나와 만나게 될 것을. 이렇게 말해도, 아인 내가 널 만나러 가려면 한참은 걸릴 테니까! 네가 내 손을 잡으라고! 할 테지만. 그 당당한 태도는 만났을 적에도, 지금도 변한 적이 없었지. 미소인지 아닌지 모를 미묘한 표정을 짓던 공허는,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에 검사의 그림자로 사라졌다. “이런 곳에 부상자가…. 괜찮으신가요? 정신 차리세요.” 흰옷을 입은 이는 그리 말하며 검사를 치료하고서 떠났고, 그를 찾아온 동료들이 발견하고서 깨운 뒤 한참이나 잔소리를 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겠지. 16. 늦은 밤 “……이샤, 아이샤. 이렇게 자면 또 나중에 어깨 뭉친다?” “으, 으….” 책상에 엎드려 졸던 마법사를 깨우고 엘프는 한숨을 쉬었다. 아직까지도 방에 불이 켜져 있어 혹시나 해 들어왔더니 혹시나는 역시였다. 연구하느라 숙소 방 정리는 뒷전이었는지 온갖 서적들이 늘어지고 발에 채였으며, 헤치고 도착한 책상 위로는 수북이 쌓인 종이 뭉치들, 그리고 그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엎어져 잠에 들어있는 보라색 머리카락의 마법사까지. 이렇게 잘 수 있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라면 능력이려나. “레나 언니…?” “정신이 좀 들어? 이렇게 자지 말고 좀 편하게 자. 일어나면 숙소 정리 좀 하고.” 부스스하게 몸을 일으켜서는 눈을 깜빡이다 다시 엎드리려는 걸 깨우고, 그 과정을 몇 번이나 했을까. 결국은 졌다는 듯 두 손 다 들고 엘프에게 끌려 나온 마법사는 엘프의 방 침대에 얌전히 누웠다. 그런 방에서 그대로 재웠다간 책에 언제 깔려도 이상할지 모르겠다고 판단했을뿐 더러, 그대로 내버려 두면 또 책상 위에 엎어져서 잠들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있으니까 옛날 생각난다. 우리 셋이 여행 다닐 때 말이야. 방을 잡기 애매할 때는 레나 언니랑 나 둘이서 같이 쓰고 엘소드 혼자서 쓰고 그랬잖아.” “…그랬지. 지금은 인원이 늘어나서 그렇게 못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여행이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어, 동료들도 이렇게 생기고 목적이 점점 커졌잖아. 그건 나도 그렇지만……. 레나 언니도 그렇지? 수색대에 남기로 했을 때 말이야, 무언가 결정한 거잖아.” 그런 말을 하며 빤히 자신을 바라보는 보라색 눈동자. 그때와 달라진 게 없어 보이면서도 더 성숙해지고 학자의 연구열이 담겼을까. 옅게 웃던 엘프는 마법사의 코를 아프지 않게 톡 쳤다. “이 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졸다가 걸린 아이샤한테는 비밀이야.” “그런 게 어디 있어, 궁금한데…!” “시간이 늦었으니 일단 자. 나중에 이야기해 줄게. 오늘은 내가 불침번이잖아.” 알겠다며 결국 이불을 덮는 마법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문을 닫았다. 그래. 막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언제나 명확했던 거야, 아이샤. 임무라는 그늘 아래가 아닌 세계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동료와 함께하기 위해 스스로 판단하고 싸우겠다고. 17. 수리 연구실로 돌아가기 위해 공간을 찢으려던 공학자는 손길을 멈췄다. 귓가에 묘하게 거슬리는 파열음 소리, 이윽고 강제 절전 모드 발동. 소리와 함께 툭 꺼지는 전원 소리. …여왕이겠군. 손을 거두고 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하니, 잠든 것처럼 절전 모드 상태로 변한 나소드의 여왕이 그곳에 있었다. 겉보기에 상처는 없으니 또 과부하인가. …어련히 무리하는 건 여전하군. 그런 말을 하다, 공학자는 여왕의 회로를 살피기 시작했다. 역시나 충돌로 인한 과부하로 일어난 절전이었으며, 지금 손봐도 금방 마모되어 비슷한 일이 언제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태였다. 그걸 알면서도 직접 고치는 것은 알량한 수색대 놀이의 일부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모르지, 그 녀석의 지긋지긋한 잔소리가 듣기 싫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고. 비록 기억 데이터는 건지지 못해도 과열되어 녹아버린 회로들을 다시 연결하고, 마모된 부품을 바꿔 끼우니, 여왕은 금세 잠에서 깨어났다. “………?” “여왕.” “애드?” “용케도 기억하는군, 이 몸에 대한 기억 데이터는 진즉 소거되고도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아이샤가 당신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까요. …저를 종종 수리해준다고.” “쓸데없는 짓을…….” 츳, 하며 혀를 차고는 공학자는 손으로 공간을 주욱 찢어냈다. “돌아가나요?” “…여왕이야말로 돌아가, 지금쯤이면 그 시끄러운 애송이들이 널 찾고 있을 테니까.” 절전 시간이 짧아서 기억 데이터 손상은 적었던 모양이군. 그런 말을 덧붙이며 공학자가 온전히 공간을 넘어가 닫힌 후에야 여왕은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그들이 찾는 건 당신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애드.” 18. 인사 “나는 니샤라고 해.” 묘한 위화감. 처음 만났을 때 수색대는 그가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지만, 자신들을 경계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은은하게 분홍빛이 도는 거울을 소중하게 끌어안고 자신들의 근처에는 한 발자국도 오지 않는 것이 그 증거였다. 하긴, 경계하는 게 당연하지. 우리가 생각해서 맞는 길을 간다고는 해도 처음 보는 이의 눈에 느껴지는 이 기운들이 그렇게 달갑게 느껴지진 않는 게 당연했다. 저쪽도 저쪽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 모양이고……. 검사는 가만히 그를 보다가 다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엘소드라고 해, 우린 엘 수색대고. 아깐 도와줘서 고마웠다.” “너희가 벨론드가 말한 엘 수색대구나,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야. …이 아이도, 그걸 바랐을 테고.” 그렇게 말하며 거울을 쓰다듬다가 검사의 손을 잡는 걸, 모두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스터들의 이름을 대며 신분을 밝혔고, 어쨌든 몰려드는 것들을 제때 막아준 것은 적절한 지원이었으니까. 돌아가는 퇴로가 막혀 다른 방법을 찾아도 부족한 상황에 도와준 이가 소중히 아끼는 것에 대해 수상하게 여기며 섣불리 캐물으며 적대적으로 돌리기에 지금의 수색대는 영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일단 돌아갈 방법을 찾도록 하는 건 어떻겠사옵니까?” “아라 누나 말이 맞아요, 아이샤 누나의 마법이 아니라면 꼼짝없이 다 같이 익사했을 테고요.” “근처에 공기가 있는 공간이 감지됩니다. 인위적인 공간으로 판단됩니다만, 그나마 가장 휴식을 취하기 적합한 공간입니다.” “맞아, 내 상황이 좋지는 않아, 내가 계속 마법을 쓰고 있는 상태니까. 전원 숨을 쉴 수 있게 하는 것도 있지만…. 체온 유지와 수압을 버틸 수 있게 하는 마법도 같이 사용하고 있거든.” 통로에서부터 이어진 전투 탓에 모두가 지쳐있기도 했다. 검사는 모두의 상태를 확인하고서 한숨을 쉬고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금은 짧게라도 휴식을 취하는 게 먼저지. 아이샤한테만 의존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가보자. …니샤라고 했나? 너도. 어차피 엘리아노드로 돌아가야 하는 건 마찬가지잖아.”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거울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라비, 벨론드에게 들었던 것보다 수색대원은 더 어수선한 것 같아. 하지만…. 이들이라면 네가 돌아왔을 때도 기꺼이 받아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사랑스러운 아이. 언젠가 너와 이들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19. 대화 “청님, 무엇을 하고 계시옵니까?” “아, 아라 누나. 오셨어요?” 포병의 뒤에서 얄궂게 웃은 무녀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한참 동안 무언가 개조를 시도하던 포병은 잘 안 됐다는 마냥 손을 털고는 일어나 무녀를 바라보았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았는데 말이에요.” “연구를 바탕으로 개조하시는 건가요?” “맞아요! 역시 아라 누나는 눈치가 빠르시네요.” 포병의 칭찬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 것처럼 호호, 하고 웃은 무녀가 가져온 것은 포장된 건 궁사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쿠키였다. 그걸 받아들고서 포병은 무언가 생각난 듯 쿠키를 받아들고 무녀를 잡아끌었다. “누나, 이왕이면 같이 드실래요?” “어머, 그래도 괜찮사옵니까? 청님의 몫으로 가져왔는걸요.” “이런 건 같이 먹으면 더 맛있다고 아이샤 누나도 그러셨는걸요.” “맞는 말이옵니다! 그런 말도 있다고 하지 않사옵니까.” 고개를 끄덕이고는 함께 옆에 앉는 무녀에게 쿠키를 건네고서 포병은 하나를 집어물었다. 바삭하고 촉촉한 촉감이 새삼스럽게 나쁘지 않아 오. 하는 소리를 내뱉던 포병과 정말 대단하옵니다…! 하는 무녀의 감탄이 공간에 울려 퍼졌다. “청님,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있사옵니까?” “음……. 늘 생각하지만 누나들은 은근히 눈치가 빠르시네요.” “후후, 그런 노하우가 생기는 법이옵니다.” “다름 아니라, 누나와 제 관계에 대해서 생각했어요.” 그 말에 고개를 갸웃하던 무녀의 모습에 손을 휘적거리던 포병은 무언가 생각하듯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저희 첫 만남이 그리 좋았던 건 아니잖아요?” “하긴, 그랬지요.” “그런데 새삼 이렇게 동료가 되어서 등 뒤를 맡길 정도로 안정적인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생각을 했어요.” 사실 이렇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게 있어서 종종 괴리감이 들 수 있다는 사실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기에 무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렇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 거 있죠?” “답이 나왔사옵니까?” “네! 그 상황이었다면 저였더라도 그랬을 테니까요.” 참으로 확실한 정리였다. 그가 똑부러지고 올곧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새삼스레 느끼니 무녀와 여우 신령에게 있어 이 대답은 상당히 대견할 나름이었다. 원망해도 될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고, 이해하며 동료로 품을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그리 생각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옵니다, 청님. 청님께서 생각해주시는 만큼…. 소녀, 헬퍼트 님과 오라버니를 되돌릴 날까지 최선을 다해 돕겠어요.” “저도요, 포기하지 말아요. 저희 같이 힘내요, 아라 누나!” 그러니 그는 앞으로도 잘 해낼 것이다, 휘둘리지 않고, 쓰러지지 않고. 설령 꺾이는 일이 있어도 반드시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20. 그리움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 아래, 거울을 소중히 쓰다듬던 인영 옆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경계하듯 올려다보니 이제 막 수색대에 합류한 이가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그의 뒤에 서있었다. “저어…. 실례가 아니라면 앉아도 괜찮을까요?” “마음대로 해.” 짧게 찾아온 적막. 그리고 그걸 깨트린 건……. “소중한 분이신가봐요.” 그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은 것을 간파한 질문. 날카롭게 바라보니 두 손을 올려 항복하는 제스처를 취하며 적대할 생각은 없다는 듯 소년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실례였다면 죄송해요, 하지만 평범한 거울처럼 보이진 않았거든요.” “눈치가 빠르네, 혼자 다녀서 그런가.” “그것도 있지만…….” 있지만? 그렇게 말하며 말을 하다 말고 흐리는 것에 소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너,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어딘가 쓸쓸함이 묻어나오는 눈으로 그렇게 라비를 바라보지 마. 라비는 이제 외롭지 않아. 그렇게 뱉고 싶었던 말을 꾹꾹 눌러 참고 입술을 짓씹었다. “아, 죄송해요…. 저도, 제게 말을 걸어주었던 누군가가 떠올라서요. 당신을 보고 있으니, 흐릿했던 목소리가 갑자기 또렷해지는 것만 같아서……. ……당신에게 감사하다고 말을 하고 싶었어요.” 역시 이상했다. 사정을 전부 말할 수는 없다는 것처럼 곤란한 얼굴을 하면서도, 그리움이 묻어나오는 눈으로 제게 꾸벅 인사를 하는 그의 모습은 어딘가 위화감이 들어서…. 감사 인사를 받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하고서 달빛을 등지고 자리를 떠나는 그에게 그 이상 물어볼 수 없었다. 21. 시작 불침번 순서가 둘. 잠이 오지 않는 사람이 하나. 잠이 필요 없는 존재가 하나. 모닥불 앞에 모여 앉았으나 드물게 어색한 공기가 오갔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성장하고 나서는 이렇게 네 명이서는 모일 기회가 거의 없었던 탓도 있었고, 무엇보다 검사의 옆에 서있는 공허의 존재감 그 자체가 분위기를 누르고 있는 탓도 컸다. “우리 넷이서 이렇게 모인 거, 오래간만이지?” 겨우 말문을 뗀 것은 마법사였다. 눈치가 있다면 거들라는 표정으로 검사를 째려보니 시선을 느낀 검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하긴, 루벤에서 함께 했던 멤버로는 오랜만이네. 아인도 그렇고.” “……그런가.” 태연하게 그의 말에 대답하는 중저음의 목소리에 엘프와 마법사는 눈을 깜빡였다. 하긴, 아인 씨는 유독 엘소드의 말은 잘 듣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지금도 유효한 거겠지. 납득이 가는 이유라고 서로 이해하고서 엘프는 가만히 셋을 번갈아보았다. “레나 누나, 왜?” “아니, 참 많이도 컸다 싶어서.” 아인한테 하는 말은 아니고. 공허가 의미가 없다는 것처럼 고개를 기울이는 것에 엘프는 뒷말을 급하게 덧붙이고서, 검사와 마법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맨날 투닥거리기나 하더니, 이제는 같이 협동할 줄도 알고. 편들 줄도 알고. 철도 들었지.” “아이참, 레나 언니도. 그게 언제적이야~!” “내 말이! 그땐 우리도 잘 몰랐을 때였고…!” “아인도 그렇지?” “…의미 없는 질문이군, 허나. 틀리진 않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시선의 끝에 고정된 것은 검사라는 걸, 그는 알고 있을까. 엘프는 작게 웃었다. 루벤의 엘 수색대에 모두가 모여 이리도 큰 목표를 가지고 나아갈 수 있게 된 건 너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22. 점검 으레 중화기는 점검을 자주 해주는 편이었다. 의외로 섬세할뿐더러, 손보지 않고 방치하다가 중요한 순간 오작동을 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었으니까. 투사에게 있어 이 행위는 이젠 취미라고 부를 수 있었다. “오늘도 중화기를 점검하십니까?” “로제인가, 그러는 그쪽도 오늘은 기계를 점검하나보군.” “그렇습니다. 방해는 되지 않도록 할 테니 같이 앉아 점검해도 괜찮나요?” “그러도록 해, 피차 점검하는 건 같은데 배척할 이유는 없지.” 군인이 기계더미를 품에 안고 옆에 앉는 것을 보고, 투사는 다시 중화기를 점검하는 것에 집중했다. 정적 속에서 달각, 덜그럭. 각자 점검하는 기계 소리가 주변을 메웠다. 문득 고개를 돌려서 보면 엘리오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구조의 기계가 눈에 띄었다. “궁금한 게 있으십니까?” “아, 신경 쓰였다면 미안하다. 아무래도 처음 보는 구조라서 새삼 눈에 띄었어. 네가 직접 만들었다고 했나?” “그렇습니다, 나소드 연구에서 영감을 받아 제가 만들어낸 아이들이죠.” 더없이 애정이 담긴 눈으로 군인이 스스로 만든 로봇을 쓰다듬는 걸 보던 투사는 음,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학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것에 대한 애정이 깊은 법이지. 23. 결심 하염없이 걸었다. 어디가 어디인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발이 닿는대로 무작정 그저 도망치듯 하염없이 걷고 걷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이제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원래도 차가운 금속의 감각이었지만 유독 더 서늘하게 느껴지는 시클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주저앉아서는 꼴사납게 손을 바닥에 허우적거려 간신히 잡아드니 따끔한 감각과 함께 손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시클의 칼날을 쥐는 바람에 손바닥이 베였을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었던 그가 사라졌으니까. 그의 소중함을 알기도 전에, 그에게 모진 말만 내뱉었는데. ……그랬는데, 그는 더이상 돌아오지 않는다.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이 그러하였다. 아, 하하……. 허탈함에 웃음이 나왔다. 저택의 실험체들을 되돌리는 것조차 불가능했고, 그들을 되돌릴 수 없다는 슬픔과 절망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방어마법을 걸어주던 클라모르조차 잃었다. 그는 나한테 마지막까지 뭐라고 이야기했지? 무슨 이야기를 했지? 그런 자책과 후회, 고통 속에 문득 빗방울이 투둑투둑 소리를 내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퍼붓는 장대비를 맞으며 시클을 끌어안고 얼마나 웅크리고 있었을까. 점차 떨어지는 체온, 흐려지는 의식 아래에서 떠오른 것은 사랑했던 형이었다. 그가 자랑스럽게 말하던 세계, 지키려던 세계…. 나를 지켜주던 소중한 사람들. 형과 그들 덕분에 이 자리에 있다면, 형이 바랐을 모습으로 이 세계를 지키자. 몇 번이고, 몇백 번이고 반복하게 되더라도 기꺼이. 형. 다시 한번만, 내게 기회를 줘. 24. 고민 날이 부쩍 추워졌다. 원래도 프뤼나움이라는 추운 지역에 있었으니 무슨 차이가 있었냐만, 체감상으로 유달리 살을 에는 추위라는 걸 느낄 정도였다. 제 곁에 있던 마법사는 춥다며 마법을 두르고 난로에 앉아있다가 그조차도 안 되겠는지 여러 가지로 보온할 방법을 찾으러 떠났고, 나머지 대원들은 할 일이 있어 각자 개인 임무를 하러 간 상태였다. 이곳에 온 지 얼마나 됐더라, 그 사이 프뤼나움 외곽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났고 그 인연이 닿아 합류했다. 어쩐지 말수가 적었지만 할 말은 똑바로 할 줄 아는 애였지. 그런 생각을 하며 검사는 한참을 손을 쥐락펴락하다 이내 자신이 가만히 있는 게 성미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하고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칠흑의 검을 쥐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한참이나 검을 휘두르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보기 힘들다는 오로라가 하늘에 활짝 펼쳐져서는 반사되는 모습이 절경이어서. “그 나이 되니 너도 제법 감상적이구나, 엘소드.” “시끄러, 할배. 그래도 저걸 보라고. 나쁘지 않잖아?” 낄낄 웃는 소리 이후에 돌아오는 적막에 검사는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솔레스가 만들어낸 의문, 베르드가 말했던 존재의 결함, 아직도 내리지 못한 결론. 사실 베르드를 처치한 이후에도 자신에게는 생각해야 하는 일이 잔뜩 있었다. 나는 나대로 있으면 그만 아닌가. 지금 이 모습 이대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는 동료들이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존재에 대한 근간을 알고자 하는 욕망이 불쑥 튀어나오고는 했다. 그렇다고 이걸 누구에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애꿎은 콘웰만 연거푸 허공에 휘둘렀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대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검사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고 눈을 지그시 감고서 다짐했다. 당장 답을 내릴 수 없다면 초조해하지 말자. 적어도, 이 여행을 계속하면 답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라고. ✿후기❀ 작년에 회지 내고 너무 힘들어서 안 낸다고 하더니 결국 보고 싶은게 생겨서 또 내고 마네요…. ㅋㅋㅋㅋ 사과님은 늘 이런 식이지! 사실 꼬박꼬박 후기 안 써도 되는데 쓰는 건 좀 정겹잖아요, 저만 그런가요? 아무튼, 어찌저찌 이 원고가 마무리됐습니다! 에픽이 좀 더 업데이트 된 후에 완료하고 싶었는데 제가 일정이 점점 바빠지다보니 원고를 마무리하는 시점은 2021년도 11월 말이 됐네요. 이때까지 신에픽 안 준 코그도 참 징하죠…? 제가 3라인 위주 논CP위주 덕질 한다는 사람치고는 회지라던지 연성을 열심히 올린 적은 없었던 것 같아서 이번 기회에 한 번 내 보고 싶기도 했어요, 이왕 내는 김에 제대로 해보고 싶었고 이것저것 넣고 싶은 옵션도 왕창 넣어보자고 생각했답니다! 이 이후에는 정말 저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예상하길 내년 후반쯤에는 3라 아엘아 회지를 생각하고 있는데 제 일정과 기력이 받쳐준다면! 의 이야기라서. 하핫. 그런 이유로 열심히 여러 조합으로 써봤어요 ㅇ///ㅇ)♥ 여러분 마음에 드는 조합이 있었을까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없으면……. 어쩔 수 없죠, 이 회지를 내는 데에 많은 응원을 해주셨던 분들을 일단 한 분 한 분 나열해봅니다! Thanks to! PYRITE님, 견충님 , 백야님 , 후부님 , 단화님 , 오이싹님 , 살라만더님 , 야옹님 , 양말님 , 삐님 , 그리고 구매해주신 모든 분들! 이 뒤로는 감사하게도 주신 축전들이 실려있습니다! 순서는 무작위라서 글, 그림 랜덤이에요^//^)♥! 멋진 축전을 주셔서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 회지를 낼 수 있게 도와주신 모든 #피의 3라 연합 Forever!♥ ✿후부님(@carrot_252) 축전입니다 "여왕씨, 너는 그 작은 나소드들이 자신의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 인가요?" "?" 모든 것이 잠든 깊은 밤. 새로운 코드 ‘일렉트라’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조사를 하고 있던 이브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잠으로 휴식을 취하는 인간과 다르게 잠을 자지 않는 이브에게 질문을 던진 것은 잠을 잘 수 없는 아인이었다. 아인은 이브의 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비와 레비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브는, 자신에게 찾아와 다짜고짜 이상한 말을 하는 아인에게 의아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이브는 대답하지 않았다. 새벽에 갑자기 내리는 호우와 함께 찾아온 불청객 같은 질문을 머릿속에 곱씹으며 모비와 레비를 바라봤다. 이브가 분석을 하고 있는 동안 쉬고 있었던 모비와 레비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브는 괜찮다는 듯이 모비와 레비의 몸을 천천히 어루어 만졌다. 레비는 그녀의 손에 비볐다. 그들은 서로 온기를 나눠줄 수 없었지만, 서로에게 온기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이브는 아인을 바라봤다. 아인의 질문에 대한 이브의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혼을 낸다.' '다시 말한다.' '한 번만 용서해준다.' "네?" 아인이 이브에게 재촉하는 듯이 다시 물어봤다. 이번에 아인은 이브의 팔을 잡았다. 그의 눈동자는 늪처럼 흐